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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축복 명 설교 시청하기
1. 영혼의 부재가 낳는 인간의 고난
현대 사회의 고통은 인간을 단순한 '진화된 동물'로 보는 세속적인 세계관에서 기인합니다.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오직 경제적 동기나 세상의 지위, 명예, 권세와 같은 '진흙'에 기반을 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속한 선택의 주권(선악과)까지도 스스로 행사하려 했을 때,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은 영혼이 잘되지 못하고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우리의 고난은 영혼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 가치에 기반을 두려는 데서 시작되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최고의 걸작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모든 축복의 근원, 삼중 축복의 원리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는 복은 단 하나가 아닙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구하는 삼중 축복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이 순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영혼이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끌어안고 든든히 서지 않으면, 세상의 풍파가 불어올 때 지위, 명예, 돈과 같은 모든 '진흙'은 형편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영혼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서 그분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과 육체까지도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요약: 모든 축복은 '영혼이 잘됨'에서 출발하여 범사의 형통과 육체의 강건함으로 이어지는 삼중 축복의 순서를 따릅니다.
3. 반석 되신 예수님과 주권 순종의 능력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만세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그분께 삶의 주권을 완전히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합니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우리라도,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을 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능력의 심히 큰 은혜를 경험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선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영혼은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고 견고하게 잘될 수 있습니다.
요약: 영혼의 잘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반석으로 삼고 선악 판단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겨 순종할 때 얻는 흔들리지 않는 평안입니다.
4. 축복을 나누는 삶, 노다지 광을 여는 열쇠
영혼이 잘된 사람은 축복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근본적인 목적은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 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나누지 않고 쌓아두면 축복의 샘은 말라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일조와 구제라는 축복의 노다지 광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는 주권 순종이며, 구제는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 노다지 광에 들어가 축복을 풍성히 캐내는 사람은 월렌 버핏과 같이 막대한 재산을 이웃과 사회에 환원하여 존경받는 삶을 살게 되며, 그 복은 끊임없이 지속됩니다.
요약: 십일조와 구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노다지 광을 여는 열쇠이며, 나누어 베푸는 삶을 통해 축복은 마르지 않고 지속됩니다.
>>자주 하는 질문과 답변 (FAQ)
Q1. '영혼이 잘됨 같이'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A1.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만세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주인으로 계시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삶의 고통과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지위나 명예가 아닌,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유지하는지를 통해 영혼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Q2. 범사의 잘됨이 노력 없이도 가능하다는 의미인가요?
A2. 그렇지 않습니다. 범사의 잘됨은 우리의 영혼이 잘됨을 전제로 하기에, 영적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더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일할 때, 근본부터 다른 형통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Q3. 십일조와 구제가 왜 축복의 노다지 광이라고 불리는 건가요?
A3. 이는 단순히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물질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물질적,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열리기 때문에 '노다지 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